일곱 - 영의 세계 경험담 (쫒아내야 한다)
오래전의 일이다.
기독교 방송에서
노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노 목사님은,
심리 상담을 하는 분들이,
과거의 상처,
트라우마에 대해서 상담을 하면서,
상처입은 과거의 나를 위로해주고
달래줘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과거에 상처 입은 나는
위로하고 달래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셨다.
자신안에 상처 입은 나,
어느때의 울고 있는 내가 떠올라서,
현재의 나를 아프게 하고,
내 삶을 망치고 있다면,
그때의 나를
마음 속에서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모든 행위는
잘못된 처방이라고 했다.
달램을 받고 위로 받으려는
모든 행위도 잘못된거라고 했다.
목사님은 자신안에 있는
상처입은 아이는
혹은 상처입은 어느때의 나,
수시로 떠올라 내 마음을
슬프게 하고 내 삶을 망치는 나는,
내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안에서 기생하는 마귀라고 했다.
나를 망치려는 마귀가,
내 안에서 과거의 상처입은 나로 변해
내 마음을, 내 감정을, 내 삶을
망치고 망치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마귀는
위로하고 달래주는게 아니라
가차없이
쫒아내야 하는거라고 했다.
상처 입은 나를 위로하고 달래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달램을 받는 모든 행위도,
마귀를 붙들고 사는거나 다름 없고,
그리하여 계속하여 마귀에게 붙잡혀 살게하는 거라고 했다.
때문에,
상처입었던 때가 떠오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안에 기생하는 마귀야 떠날지어다!
라고 선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마귀는 마음 안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영적 전쟁을 끈질기게 치뤄야 한다고 했다.
과거의 아픈 상처가 떠오를 때마다,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한다고 했다.
나도 노 목사의 말씀에 공감한다.
마귀는 우리의 상처,
우리의 트라우마를 붙들고 산다.
상처나 트라우마는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지
현재는 실존하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과거는 사라진 것이다.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현재에 작용하지 않는다면,
과거는 없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현재에 있도록 하기 때문에,
과거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에 없는 것이다.
현재엔 현재만 있다.
오늘에는 오늘만 있다.
자신안에 상처가 있다면,
자신안에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불쑥 불쑥
올라와 자신을 괴롭힌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라진 것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붙들고
나를 망치고
내 삶을 망치고 내 인생을 망치는
마귀야 떠날지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다!
라고 선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의 일을 되새기게 하는
모든 것들과 결별해야 하고,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언행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마음에서 되새김질도 하지 말아야 하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상처입은 내가 떠올라도
감정에 전혀 요동이 없어질 때까지.
어쩔 수 없이
상처 입은 과거가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나 상황을 접한다면,
그런 순간마다 마음에 울타리를 치고,
마음을 지켜야 한다.
잘 안되지만 연습하다보면 된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은 내 탓이다.
내가 잘못해서 상처입은 것이고,
내가 잘못 살아서 상처입은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상처입은 것이고,
내가 강하지 못해서 상처입은 것이고,
내가 나를 세우지 못해서,
상처입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내가 마음의
울타리를 치지 않았기 때문에,
삶의 울타리도 무너지고,
인생도 무너진 것이다.
모든건 자신 탓이다.
가난도 질병도 고난도 다 내탓이다.
모든건 내 탓인데,
부모탓, 환경탓, 정치인 탓, 제도 탓이라고 하는건,
비겁한 행위이다.
모든건 자신의 탓인데,
남탓으로 여기는건
비겁한 행위이다.
화나고 속상한 건 얘기하며 사는게
자연스런 인간사이지만,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
내가 이렇게 된건 부모 때문이다,
남편 때문이다,
국가 때문이다, 등등핑계를 대는건
비겁하기도 하지만
야비한 행동이다.
자신이 잘못된 걸
남탓이라고 하는 이들이,
타인을 함부로 판단한다.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오만한 태도로,
남을 판단한다.
다른 사람이 잘못됐다고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는거다.
비겁하고 야비한 행태이다.
이런 태도론 새로워질 수가 없다.
남탓 하게 하는 것도
자기안에 기생하는 마귀가 하는 짓이다.
마귀는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는 걸 방해하는 악한 존재다.
남탓이라고 여기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수렁에서
나올 수도 없다.
남탓만 하는
구덩이에 살다가 죽는다.
수렁에 빠져 있다면
수렁에 빠진 내가 일어나 나와야 한다.
인간 누구도 수렁에 빠진
나를 건져주지 않는다.
건져주지도 못한다.
타인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걸
누가 건져줄 수 있는가?
인간 누구도 타인의 마음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누가 건져줄 수 있는가?
우리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보내신 하나님 아들이다.
하나님께선
내 안에 잘못된 것을 불사르실 때가 있다.
내 마음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들,
나의 잘못됨들, 나의 상처들을
죄다 불사르고자 하실 때가 있다.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새롭게 해달라고 하고,
자신의 더러운 모습에
스스로 역겨워하며 그 역겨움 때문에 통곡하며,
새롭게 해달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주신다.
그리고 내 삶에 발목을 잡는,
상처입은 나, 상처의 기억을 불살라 주신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위해,
우리안의 고통과 잘못됨을
불살라서 태워버리고
소멸시키고 싶어하신다.
이때 뒤돌아보면 안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멸하실 때,
뒤돌아 보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
삶이 멈춰버린거다.
뒤돌아보면 안된다.
상처를 다시 떠올리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과거의 나를 불살라 버리실 때,
뒤돌아보지 말고,
앞을 보고 뛰어야 한다.
이 글은 노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기록했다.
노동은 신성하다.
노동은 잡념을 없애주어
마귀로부터 이길 힘을 준다.
노동을 할 때 육신은 힘들지라도
머릿속은 단순하고 정결해진다.
머릿속이
단순하고 정결한 상태,
그리하여 마음도
단순해지고 정결해지는 상태,
나는 그 상태를 좋아해서,
노동을 하기를 좋아하고,
노동하는 자를 찬양한다.
예수 보혈에 의지하여 살고
말씀 속에서 끊임없이 일하면,
마귀가 틈타지 않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내가 죽을 때까지 일하고
내 움직일 수 있게
내가 쉼없이 일할 있게 해주기를,
간구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