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1 2019. 12. 11. 15:41

아팠다.

온 몸이 너무 많이 아팠다.

 

어깨에서 시작된

미세한 통증이 아픔의 시초였다.

 

처음엔 통증이라기 보다는

근질거림이었는데,

 

어느날인가

어깨에 붙어 있어야할 근질거림이

 

약간의 통증으로 변하여,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 허리를 거쳐

골반쪽에서 양 갈래로 갈라져

 

양쪽 허벅지를 타고 급속히 뻗어갔는데,

골반쪽에서 통증의 강도가 급격히 세지기 시작했다.

 

통증은 내 몸을 완전히

점령하겠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이동해

 

종아리와 발목을 지나

엄지발가락까지 내달렸다가

 

갑자기 방향을 홱 틀어

쏜살같은 속도로 지나온 길을 치받고 올라가

 

머리를 세게 강타하는

끔찍한 짓거리를 날마다 날마다 저질러댔다.

 

통증은 자신이 지나간 자리마다

통증을 남겨두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몸의 부위에 따라,

 

극심하게 아프거나

그보다 조금 덜 아프거나의 차이가 있을 뿐

 

내 온 몸은

통증으로 뒤덮혀 있는 것 같았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이

통증을 통해서 내게 응해진 나날들이었다.

 

통증은 정말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창대했다.

 

얼마나 강렬하고 창대했던지

내가 있는 세계는 온통 통증밖에 없는 것만 같았다.

 

만물이 통증에 의해 창조되어

통증으로 말미암아 통증으로 충만한 것 같다고

 

나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읊조렸고,

 

태초에 통증이 있었고,

이 통증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느니라 같고,

 

나는 통증에 의해 나서

통증으로 말미암아 살다가

 

통증으로 돌아갈 것만 같다고,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아픈데?

움직이기도 힘든데?

 

뇌는 살아 있는데?

뭘 하는가?

 

뭔 말이라도 중얼거려야지.

계속 중얼거리다보면,

 

중얼거림의 회오리속으로

통증이 빨려들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망으로

나는 통증 속에서 중얼거림과도 함께 했다.

 

ㅋㅋ.

 

......

 

아프다,

많이 아프다.

 

그러나 아직은 아픈게 나쁘지만은 않다.

내 안에 있는 틀들이 무너지는 시간들이어서.

 

...

 

내 안에 있는 틀,

규정화 되어 있는 무언가들.

 

그것들은 나를 상하게도 했지만,

타인을 상하게도 한 칼날이었음을 알기에

 

나는 그것이 제거되길 원했다.

 

그러나 고통 없이

제거되는 내면의 틀은 없다.

 

(고통 없이 제거되는 내면의 틀은 없다,

와 흡사한 의미의 말이 세상엔 널려 있다.

 

생의 진리,

생에 대한 깨우침이 결국 같아서다.)

 

.......

 

오랫만에 횡설수설해본다.

내 두뇌 세포가

 

오래된 과일처럼

생기를 잃고 푸석푸석해져서

 

글을 못 쓰게 될까봐

두려웠는데...

 

다행히 자판은 두드려진다.

 

......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서,

 

성경을 다시금

찬찬히 읽는 시간이 주어지길 원한다.

 

내가 해야할 일,

내가 하고자 했던 일도

 

잘해 나갈 수 있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