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30~40년 전이다.
고등학교 때
영화 '휴거'가 나왔었는데,
내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휴거를 보라고 한 후,
수요일 밤 예배 시간에
요한계시록 설교를 했었다.
여름방학 학생회 수련회 때도
요한계시록 설교를 했었다.
당시 두려움에 떨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내겐 설교 말씀도,
영화 휴거도 그닥 와 닿지 않았었다.
영화 휴거는
사람들이 휴거가 되어
거리가 텅 비어 있을 때,
휴거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도망을 다니다가
계단이나 어두운 곳에서
검은옷을 입은 사람들한테 붙잡혀
검은옷이 예수님을 믿겠냐고 물을 때,
믿는다고 하면
죽임을 당하는 영화였다.
휴거 영화를 보며,
18살이었던 나는,
내가 만약 붙잡힌다면,
예수님을 꼭 믿겠다고 해야지,
라고 굳게 다짐하긴 했지만,
사실 그 보다는
사람들이 휴거가 된 후,
텅 비어 있던
거리와 상점들 풍경에 더 관심이 갔었다.
상점 중엔 옷가게가 있었고
옷가게 행거엔 옷들이 걸려 있었는데,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이 휴거가 되면,
상점에 주인도 없고 종업원도 없어서,
저 옷들을 다 입어볼 수 있겠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휴거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휴거가 되서
사람들이 다 사라져서
상점들마다 텅텅 비어 있어서,
갖고 싶은걸 가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은 나를 즐겁게 했다.
얼마나 탐심이 많았으면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지..
그때의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오지만,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굳게 지키겠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중고교때
나는 불량한 학생이었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사랑했었다.
불량한 학생이었는지
모르지만이라고 표현하는건,
내 행실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나를 귀히 여기고
계셨음을 알기 때문이지,
내가 불량한 학생이 아니었다는게 아니다.
나는 불량했다.
그럼에도 때가 되자,
하나님은 작정하고(?) 이끌어주셨고,
그로인해 내겐 불량했던 기억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휴거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인가?
우리반에서 공부를 아주 잘했던 아이가,
일년후면 지구가 종말을 하고
사람들은 휴거가 될거라며
자퇴를 하는 사태가 있었다.
공부를 워낙 잘해서인지,
담임 선생님은 물론
교장 선생님까지 불러서 말렸고,
우리반 아이들도 말렸지만,
그 아이는 너희들도 내년이 되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한건지 알거라고
되려 우리보고도 휴거를 준비하라고 한 후
학교를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 아이는 품행이 단정했고
공부도 아주 잘해서,
선생님도 기대를 하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타깝다.
그때 나는 종교가
한번 빠지고 세뇌되면,
학교까지 그만두게 하는
아주 무서운 거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그즈음 나는 공부도 안하고
남자들이나 쫒아다녔던 불량한 학생이었던 한편,
집안 걱정과
종교와 예수님에 대한 고민이
들끓어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살았던 학생이기도 했다.
그 당시 교회를 건축할 때
벽돌도 나르며 참여했는데,
교회 건축후,
학생회에서 믿음이 좋다는
선후배가 연달아 3명이 죽었었다.
한 명은 물에 빠져 죽고,
한 명은 잠자다 죽었고,
(심장마비였던가 싶다)
다른 한명은 병을 앓다 죽고...
교회 건축을 마치자 마자 연달아 일어난 일이었다.
물에 빠진 여학생은
내랑도 친하게 지낸 한 해 후배였다.
잠자다 죽은 남학생은,
내가 9살때까지 살았던 산골 동네에서
나와 같이 자라서
남다른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착한 선배였다.
병들어 죽은 남학생은
학생회 회장을 맡았던 두해 선배였다.
교회 건축을 한 후,
갑작스럽게 일년도 안되서 다들 그렇게 떠났다.
당시 굉장히 슬퍼했다.
내 머리는 더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아는 예수님이랑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거랑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셨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려 하셨는데,
교회에선 어떤 형식적인
틀 속에 우리를 가두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굉장히 복잡한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무래도
죄와 율법과 구원에 대한
생각을 했던게 아닌가 싶다.
나는 이런 생각을
당시 누구와도 나눌 수가 없었다.
(그때 고민했던 그 고민에 대한
답은 내가 평생에 걸쳐 찾고 있고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결국 나는
내랑 같이 학생회 활동을 하던,
친구(남자아이였다)한테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설교랑
내가 아는 예수님이랑 다르다고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세뇌를 시키고 있다고, 당돌하게 말한 후,
교회를 다니다말다 하다가
종국엔 그만뒀다.
마흔살 쯤 그때의 전도사님을 만났다.
전도사님은 목회를 하다가,
목사직에 염증을 느껴,
목사직을 그만두었다고 하셨고,
통역 일을 하시고 계신다고 했는데,
그 후 아프리카로 자비량 선교를 떠나셨다.
목사였던 그 분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건,
교회에서 주일마다 예배 드리는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학창시절에,
나의 불량도 보였던 한편,
내가 설교 말씀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게 아니라,
뭔가 자기 생각 속에서
고민하는 아이라는 것도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망가지면 아주 망가지고,
잘되면 아주 잘될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아주 망가지지도,
아주 잘 되지도 않았지만,
나의 겉 모습 속에서
나의 내면을 약간이라도 간파한 분은
그 분 한 분밖에 없는 것 같아서 기뻤는데,
그 분은 교회 안 나가도 된다고까지 말씀하시고,
통역일을 하며 선교를 하러
아프리카로 떠나셨다.
(아프리카인걸로 안다)
휴거...
다시 휴거로 돌아간다.
중후반쯤인가?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교회에 모여 기도를 하는
장면이 텔레비젼 뉴스에 나온적이 있다.
휴거는,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고,
휴거가 일어나지 않자,
교회 마당을 지나
뻘쭘한 표정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의
풍경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런데 빠지는걸까?
종교가 주는 세되는 정말 무섭다.
몇년전인가,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유명한 누군가가
휴거라는 책도 썼는 모양인데,
휴거.
나는 교회나 영화나 책에서
말하는 이 휴거가 믿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음이 시끄럽거나
사회가 시끄러울 때
휴거 사건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장난삼아 말할 때가 있지만,
교회나 영화나 책에서 말하는
휴거가 믿어지진 않았다.
사람들은 언젠가 마지막 때가 되면,
휴거 사건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나는 믿어지지 않는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확신한다는게 아니다.
정말 있다고 하더라도,
내겐 믿어지지지 않는다는거다!
내가 안 믿어진다는데 어떻할 것인가?
믿는것처럼 가증을 떨수는 없다.
나의 내 세포는 휴거를,
영화나 설교에서 말하는 휴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휴거!
휴거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아래는 휴거를 이야기하는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서 말씀이다.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4~17절(개역개정판) -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쓴 편지이다.
17절을 보면,
바울은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라고 했다.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라는 부분을
휴거라고 하는 모양인데,
데살로니가에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말했던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에베소서 2장 5~6절 -
라고 했다.
개졍개정판과 개역한글판은
6절을 앉히시니, 라고 번역해뒀는데,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과
영어 성경인 kjv와 niv와 nasb는 앉혔다로 번역했다.
앉혔다,
완료형이다.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혔다,
고 하는데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말씀이다.
예수님과 하나된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당연히 예수님이 있는 곳에 함께 있다.
성령에 의해 거듭난 자들의
육신은 땅에 있더라도,
그 영은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이 계신 하늘에 있다.
- 허물로 죽어 있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임으로 부활을 의미하는거다.
그렇다면
예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허물로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예수님이 있는 곳에
함께 있다고 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라고 한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휴거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위의 말씀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의미일까? 다른 의미일까?
휴거,는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부활과 다른걸까?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부활은
영과 육신이 함께 하는 부활일까?
아니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이뤄지는 영의 부활일까?
다시 말해
부활은 거듭남일까 아닐까?
....
나는 성령과 함께 하는 이들이
성경을 읽으며
예수님께 여쭙고 또 여쭈어
스스로 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려놓는다.
4. 궁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리라
(개역개정판)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무척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크신 사랑으로
5.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앉게 해 주셨습니다.
7.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비하심으로 베푸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앞으로 올 모든 세대게에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 현대인의 성경 -
- 에베소서 2장 4~7절 -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 요한1서 2장 27절 -
성령을 받은 자들은
주께서 친히 가르침으로 다른 사람 글은 참고로만 여기면 된다는 것을
주께서 친히 가르쳐주실줄로 믿습니다.
네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 야고보서 3장 1절 -
사람 중에 높임(칭찬, 존경)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다.
- 누가복음 16장 15절 -
주님,
제가 이 글을 작성함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나라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의해서임을 아실거라고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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