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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물 제사와 예수님 십자가 죽음

다니엘1 2021. 8. 2. 05:29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 짓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 창세기 4장 1절~4절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 히브리서 11장 4절 -



창세기 4장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히브리서 11장엔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려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두 말씀을 놓고 해석이 분분한 걸로 아는데,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하나님이라도

토지 소산물과 양의 첫 새끼중



양의 첫 새끼와

아벨만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의 기록만 본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토지소산물을 십일조 등으로 바치라고 했고

동물은 속전제 등의 용도로 바치게 했지만,



율법을 주시기 전인 이때까진

제물을 바치라고 명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가인과 아벨 스스로 제물을 드렸다.




가인은 토지소산물을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기름을. 



하나님께선

하나님께 뭔가 드려야 한다고 믿고

제물을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온



가인과 아벨 둘 다를

어린아이처럼 어여쁘게 보셨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과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건,

제물을 꼭 받아야했기 때문이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당한 양의 첫 새끼가 불쌍해서 안아들었을 것 같고,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자신이 치는 양의 첫 새끼를 죽인 아벨이 마음이 아플까봐,

아벨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고 아벨도 안아들고 품어주셨을 것 같다.



내라면 그랬을 것 같다.



생명과 동물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이 치는 동물은 물론 다른 동물도 죽이지 못한다.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동물을 죽이는 순간,

동물이 죽을 때 겪는 고통을 동일하게 느낄거라고 여겨지고,



동물을 죽이면서

자신이 죽는것 같이 마음의 고통을 느낄 것 같다.



동물의 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며,

마음 가득 벌겇게 달아오른 고통의 덩어리가 있었을 거라고.



나는 아벨이 그랬을 거라고 여겨지고,
하나님께선 아벨의 그 고통과 그 마음을 아시고

아벨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아벨과 아벨이 드린 제물만 받았을거라고 여기고 있다.

아벨이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동물을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서,



자신이 치는 양의 첫새끼를 잡아죽여

바쳤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아벨을 받으셨을까?



양의 첫새끼만 불쌍해서 받아들지,

아벨까지 품어주셨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생명의 쳣 새끼를 죽여서


하나님께 드린다는건,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믿음과

경외와 사랑이 없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라고 기록했을 거라고 여긴다.



하나님께선 율법을 주시면서,

인간이 죄를 지으면 동물을 대신 죽여서 바치게 했다.



약한 자를 보호하는

이땅의 질서를 위해 율법을 주시고,



(나는 율법이 약한 자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여긴다)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선,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인간의 죗값을 동물의 죽음을 통해 대신 치루게 했다.

 

3.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속죄제를 위하여 숫염소를 가져오고 

 

또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되고 

흠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가져오고

 

4. 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숫양을 가져오고 

 

7.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

 

8. 이에 아론이 제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

 

9. 아론의 아들들이 

그 를 아론에게 가져오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를 찍어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는 제단 밑에 쏟고

 

10. 그 속죄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꺼풀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고

 

11. 그 고기와 가죽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니라

- 레위기 9장 - 

 

인간은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댓가를 반드시 치뤄야 했다.

 

하나님께선 인간의 죄를 위해,

동물을 죽여 그 피를 뿌리는 제사를 지내게 함으로 속제케 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자일 경우,  



죄를 지을 때마다

동물이 한마리씩 죽는다고 생각하면



계속해서 죄를 짓기가 어려울 것 같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며 살것 같다.



내가 지은 죄로인해



동물이 대신 죽어나가는데,

어떻게 죄를 계속 지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동물 제사를 지내게 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너가 죄를 지으면,

너 대신 동물이 죽으니깐,



동물을 불쌍하게 여기고,

동물이 죽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말라고,

죄짓는 행위를 멈추라고!



그런데 인간은 죄를 멈추지 않았고,

동물을 잡아 죽이는 제사는 하나의 의식이 되어버렸고,



심지어 제사 제물로 쓰일

동물을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까지 생겼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인간들이 잔인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선 잔인하지만,

한편 너무도 약한 우리 인간들을 궁휼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며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루게 해주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장 12절-

로 기록된 바와 같이,



일회성 동물피 제사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제를 이루어주셨다.



감사하게도 우리 인간들은

동물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동물도 인간을 대신해

더이상 죽음을 당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동물을 대신한 제물이 되시고,

단 한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제의 길을 이루셨고,



우리는 우리 죄를 속량해주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믿음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자신이 치는 양의 첫 새끼를 잡아죽이면서,

자신이 죽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을 아벨처럼,



내 죄,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고통과 그 죽음이



내 것, 우리의 것으로 여겨져,

나 역시 고통을 느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상태,



나를 온전히 내어주는

그 상태까지 가는 가는 믿음.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며

받는 건 바로 그런 마음이고 그런 믿음일 것 같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은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은 내용을 기독교 카페에서 짧게나마 댓글로 단적이 있는데,



공감을 얻은 바는 없다. ㅋ

하지만 나는 웬지 그럴 것 같다. 



나는 예수님이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도 구원하고 계신다고 여긴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저쪽에선 동물을 계속 죽이는 제사를 지냈을 터이니.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 요한 복음 3장 16절 - 



할때에,

인간을 이처럼 사랑하사, 가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고 한게 아닌가 싶다.



인간과 동물을 다 구원하시는 예수님은

예수님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인간과 동물과 함께 식물들도 어여삐 보게 만들고,

우주만물 전체를 구원하시고 계신다고 여긴다.



그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고 한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