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내 기억이 왜곡된다.
사라지기도 하고,
부풀려지기도 하고, 토막나기도 하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를 신뢰할 수가 없다.
내가 나를 신뢰할 수가 없으니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주장하고 시공간을 넘어서 중얼거린다.
내 성격이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점점 심해지는걸 느끼게 되면 치매인가 싶어서 참담하고
참담하기에 짜증스럽다.
내가 나를 보며 짜증스러운데,
나를 상대하는 이들은 얼마나 짜증스럽겠는가,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과학의 소설화라고 여겨지는 소설이었다.
(이 또한 정확하지도 않다)
공상 과학 소설처럼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만 채워져 있는 터라,
소설을 이런 모티브를 갖고와
이런 식으로 만들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중도에 읽다가 말았었다.
내 안에 확정적인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가,
갑자기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소설 제목이 생각이 났다.
내 두뇌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 소설인가 싶어서,
찾아서 읽어보려 책장을 뒤졌는데 없었다.
이사다닐 때마다 책을 정리해서 버리는 내 습관에 의해 희생당한 모양이다.
버려짐의 희생. ㅋㅋ.
쓸쓸하게 버려진 불확정의 원리. ㅋㅋ
할 수 없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불확정성의 원리와 양자물리학이라는 단어가
동시에 들어간 글들이 쭉 나열되었다.
아무거나 눌러서 읽어보았다.
그 아무거나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지는
나로선 알 턱이 없는데,
여하튼 불확정성의 원리는
어쩌구저쩌구라고 하는 것인데,
그 글의 결론에 이르면 이런식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관측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관측함으로 인해 실체화되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과학으로 증명되었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입자는
위치를 측정하려고 하면 크기가 커진다.
자세히 관측하려고 하면 확장된다.
뭐야?
우리 마음과 흡사하지 않은가?
의식하지 않으면 실체가 없는데,
의식함으로 인해 실체가 되고,
의식한 것을 관측하려고 집중하면,
의식당한 것이 커지고 확장되지 않는가?
예전에 물리학과 관련된 서적을 뒤적거려보면서,
물리학이 우리의 마음의 원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데,
양자물리학은 더 그렇지 않은가?
과학으로보든 뭘로보든,
내가 이 모양인 것은 결국 내 마음의 문제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괴로운 일이다.
어떨땐 내게 기억이란 공간은,
인적이 없는 한적한 시골길의 버스 승강장 같다.
버스가 지나간 적이 있는지 없는지,
버스가 지나갔다면 사람을 태웠는지 안 태웠는지,
가르쳐주지 않는,
텅비고 황량하고 적요하고 쓸쓸하기짝이 없는 공간.
수영장을 끊었다.
늙는건 괜찮은데,
치매가 심해질까봐 치매방지를 위해 운동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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