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쫒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 요한복음 2장 11절-17절-
예수님이 오시기 전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의한 제사를 지냈다.
우리 인간들이 죄를 지으면 피로써 댓가를 치루게 했는데,
동물을 죽여 흘린 피를 대신 바치게 함으로써
우리 인간들의 죄의 댓가를 동물의 피로 대신 하게 했다.
하나님께선 동물도 사랑하시지만,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들,
자유의지를 주어 감정도 마음도 잘 다스리며 살라고 했는데,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속성을 갖고 있는,
우리 인간들을 궁휼히 여기시고,
죄없이 깨끗한 동물의 피를 대신 바치게 했다.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이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동물을 구입하여
죽여서 피를 바치려고!
그 자리는,
죄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동물의 피를 대신 바치는 엄숙하고도 숙연하고도 너무도 죄스런 자리여야하는데,
성전에올 때 성전 마당에서
동물을 돈으로 사서 즉석에서 죽여 바치는 제사에 과연
참회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을까?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스럽고 숙연해지는 마음이 있을까?
죄에 대한 참회가 아니라,
돈으로 동물을 사서 치루는 일종의 행사와 같지 않았을까?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선
성전이 그렇게 장사하는 곳처럼 되어버린데에 많이 화나신 것 같다.
(마태복음에도 똑같은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쫒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하신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노하셨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예수님께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쫒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도 쏟고 상도 엎으셨다.
상당히 화가 나셨음을 알 수 있는데,
예수님께선 이렇게 화가 나 있는 상태이면서도,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겐 다르게 대하셨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노끈으로 만든 채찍으로 양과 소 다 내쫒으시고
돈 바꾸는 상도 엎으셨으면
비둘기를 넣은 상자도 엎고 비둘기도 쫒으실 수 있는데,
그러지 않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여기서 가져가라,고 했다.
양과 소를 파는 사람들.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
비둘기 파는 사람들.
비둘기 파는 사람들은,
양과 소를 파는 사람들이나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보다
물질적으로 적게 가지고
소박한 사람들일 거라는 느낌이 온다.
그리고 양과 소는 내쫒더라도 다시 붙잡을 수 있고,
돈상은 엎더라도 다시 줏어담을 수 있지만,
비둘기는 쫒아내면 날아가서 다시 잡지 못한다.
예수님께선 성전에서 장사하는 분위기에 화가 나셨지만,
가난하고 소박한 이들이 돈 몇푼 벌자고,
비둘기를 모아 팔려고
나와 앉아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노끈으로 만든 채찍으로 양과 소를 쫒고
돈 상도 엎어버리셨지만,
비둘기는 쫒아내지도 않고 비둘기 상자를 엎지도 않고,
다만, 여기서 가져가라,고 말씀 하셨던 것 같다.
몇줄 안되는 간략한 기록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읽혀진다.
위와 같은 일화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 중에,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 기록된 내용이 다르다.
마태복음엔,
-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쫒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 하시느니라,
로 기록되어 있다.
요한 복음엔,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쫒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로 기록되어 있다.
마태와 요한이가 같은 사건을 같이 보았는데도,
마태보다는 요한이 더 구체적으로 기록해두었고,
마태보다는 요한이의 시선이 더 세밀하고 따뜻하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화가 나셔서 행하신 일만 보고 기록했을 뿐,
예수님께서 비둘기를 가져가라,고 하신 장면은 보지 못했거나 무심히 넘겼지만,
요한은 예수님께서 화가 나셔서 행하시는 일을 보면서도,
비둘기 파는 이들을 배려했던 예수님의 마음까지 보았던거다.
예수님의 마음을 볼 줄 알았던 요한.
복음서를 비롯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 얼마나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고,
얼마나 사랑이 많은지를 느낄 수가 있다.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만 주목한게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련의 말과 사건들 속에,
숨어 있는 예수님의 마음도 읽고 있었다는게 느껴진다.
예수님 안에 있는 따뜻함과 사랑을 읽고 있었다면,
요한이의 마음 안에도 따뜻함과 사랑이 있었다는거다.
예수님께서도 요한이를 읽었던게 아닐까?
그래서 요한이에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맡긴게 아니었을까?
-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복음 19장 26절,27절-
위의 기록에 나오는 사랑하시는 제자가 요한이다.
예수님껜 형제, 즉,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겐 다른 자식도 있었는데,
요한이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끝까지 모셨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의 12제자 중 11명은 처형 등의 방법에 의해 순교했다는데,
사도 요한이만,
유배를 당해서도 살아남고 장수했다고한다.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됐을 때
기록한 요한계시록은 요한이가 본 계시에 대한 환상을 기록한거다.
맑고 깨끗한 영혼이 아니면,
계시에 대한 환상을 볼 수가 없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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